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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cm / 28kg / 11 years

상상력, 정직, 순종적인, 박애주의, 애정결핍

 

 작은 소녀의 머릿속은 온갖 환상적인 상상으로 가득 차있다. 상상 속의 소녀는 유니콘과 뛰놀고, 무지개색 강물 위에 뜬 별사탕 모양 돌을 밟고 건너로 향했다. 각종 동물과 마법동물들은 소녀의 옆에서 재롱을 떤다. 보랏빛 태양이 저물 때까지 한참을 신나게 놀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소녀는 다시 다락방 한구석에 앉아있었다.소녀는 밋밋한 현실에 저 혼자 존재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환상적인 세계가 내게 오는데. 하여 혼자 있는 시간이 길었던 소녀는 곧잘 눈을 감고 저만의 상상 속으로 빠져든다. 상상 속에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 현실에서는 자연히 말더듬이로 남았다. 나이가 두 자릿수가 되도록 소녀의 말은 단어의 나열에 그쳤고, 그 마저도 쉬운 단어들 뿐이다.

 

 소녀는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정직하기 위해 애썼다. 할머니께서 자주 말씀하셨듯, '보채지 않고 거짓말 하지 않는 착한 아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할머니는 그런 소녀를 흡족하게 여기셨고, 소녀가 정직하게 행동한다고 여겨질 때마다 간식으로 보상해주셨다. 소녀는 할머니의 기준으로 짜인 틀 속에서 언제나 정직하다. 정직하기 위해서는 여러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거짓말 안 하기, 남의 물건에 손 대지 않기, 닫힌 문은 함부로 열지 않기, 상대의 허락 없이 몸에 손 대지 않기, 기타 등등. 소녀는 짧은 삶 동안 모든 요건을 훌륭하게 만족시켰다. 할머니를 실망시키지 않으려 모든 것을 순종적으로 받아들인 덕분. 입학 후에는 할머니의 지침을 거의 잊고 있다.

 

 소녀의 곁에는 언제나 사람이 부족했다. 할머니와 함께 살지만 할머니는 한 명뿐이었고, 상상 속의 친구들은 많지만 전부 눈을 뜨면 사라질 것이었다. 소녀에게는 사람이 미지의 존재와도 같았다. 하나 뿐인 외손녀를 방에만 꽁꽁 가두어 키웠던 할머니의 탓도 있지만, 집 밖으로 나서면 말 조차도 할 수 없었기에 사람을 만나고 관계를 쌓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소녀는 사람을 사랑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만큼 만났을 때 제가 가진 걸 전부 퍼주려 들었고, 조금이라도 오래 대화하기 위해 애썼다. 소녀는 사람이 말할 때의 울림을 좋아했다. 알아듣지 못하는 단어가 절반인 말의 높낮이, 억양, 발음을 듣고 싶어했다. 그 이유를 차치하고라도 소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했다. 사랑받고 싶으니까.

- 소녀의 외할머니는 언제나 소녀를 끌어안고 신비로운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소녀의 할머니, 할머니의 할머니, 그리고 그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전해져 왔다는 이야기들.

 

- 주위 사람들은 소녀의 외할머니가 마녀라고 수근댔다. 소녀의 할머니도, 할머니의 할머니도, 모든 여자들이 사악하기 그지 없는 마녀라고. 하지만 진실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 태어날 때 어머니가 죽고, 이듬해 아버지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6살 때까지 외할머니와 살다가, 지금은 친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다.

 

-넉넉한 집안의 외동딸이라 부모님의 사망 이후에도 풍요로운 삶을 지속할 수 있었다.

 

- 말이 서툴다. 아는 단어가 몇 없고, 문장 구조를 만들기 힘들어한다. 보통 아는 단어나 배운 단어를 띄엄띄엄 섞어 말하는 식.

 

- 동화책을 읽으며 알게 된 단어가 아는 단어의 전부. 문장을 말할 때는 말을 더듬는다.

 

- 제 감정을 표현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팔을 양 옆, 위 아래로 열심히 휘젓는다. 보통은 그렇게 애써도 단어를 몰라서 기억해내지 못한다.

- 곤란하거나 당황했을 때 가디건 소매를 쥐어뜯는 버릇이 있다.

 

- 가디건은 아버지의 유품이고, 목도리는 할머니가 입학 선물로 떠 주셨다.

 

-혼자 별을 보며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길다.

 

- 부모님이 하늘에서 살고 있다고 믿는다.

 

- 별을 '정말' 좋아한다.

 

- 약간의 애정결핍이 있다.

 

- 대화하는 걸 좋아한다.

" 별, 보석. 반짝여. "

- 하트 모양 로켓 목걸이. 성인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 앞면에는 섬세한 장미 문양이 음각되어 있고, 안에는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이 들었다. 보이지 않게 옷 안에 착용한다.

 

- 작은 진주가 달린 검은 머리끈. 평소에는 손목에 차고 있다가 가끔 엉성하게 머리를 묶어올릴 때 쓴다.

 

- 미니 플라네타리움. 정십이면체. 받침대를 제외하면 거의 비어있다시피 해 가볍다. 태어난 날의 밤하늘이 새겨져 있다. 아버지가 첫 번째 생일 선물로 만들어 주신 것. 언제나 소중하게 품에 안고 다닌다.

 새카만 흑발은 어깨에 걸려 이리저리 갈라지고, 이마를 덮은 앞머리는 눈썹에 닿아 눈을 반쯤 가렸다. 관리하지 않은 생머리는 언제나 축 가라앉아 있다.

 머리와 같은 색의 모양 좋은 눈썹 아래로는 양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 눈꼬리가 살짝 치켜올라간 눈은 고개를 숙이고 있을 때면 더 날카롭게 보이기도 했다. 무표정하게 있으면 차가운 인상이지만, 대화를 나눌 때면 자주 웃는 덕에 날카로워 보이지는 않는다.

 옅게 진 쌍커풀은 데룩데룩 구르는 흐린 초록빛 눈과 더불어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소녀는 누군가 늪 색이라고도 말했던 제 눈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똑한 코 아래에는 도톰한 입술이 자리한다. 소녀의 밋밋한 얼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입술은 자주 핥고 물어대는 탓에 발그레한 윤기가 돈다.

 

 왜소하고 작은 소녀는 언제나 고개를 조금 숙인 채 머리칼 사이로 상대를 훔쳐보곤 했다. 허여멀건 얼굴, 흐릿한 눈. 의외로 표정이 다양한 그 얼굴에 주목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교복은 언제나 단정하게 갖춰 입었고, 교복 위에는 베이지색 목도리를 두르고 도톰한 쥐색 가디건을 걸쳤다. 제 몸보다 훨씬 큰, 낡은 성인 남자용 가디건은 소매를 둥둥 걷어부쳐도 손가락만 겨우 보일 정도. 허벅지를 반쯤 가릴 정도로 내려오는 긴 가디건이 불편하지도 않은지 꿋꿋하게 입고 다닌다. 반대로 목도리는 떠낸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는 새 것이다. 교복 아래로는 검은 메리제인을 신었다.

 손가락이 길고 얇은 편. 쉴 새 없이 물어뜯은 손톱은 언제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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