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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cm / 39kg / 14 years

친절, 집중력, 호기심, 솔선수범

 

 소녀는 몇 시간이고 차분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모르는 단어가 나와도, 아는 단어가 나와도 책의 내용은 언제나 흥미로웠다. 아는 단어가 늘어날 수록 표현할 수 있는 말이 늘었고, 말이 늘면 자연스레 단어를 고르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소녀는 여전히 말을 더듬었다. 대화가 힘든 것도, 어렵고 모르는 단어가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어쨌든. 소녀는 말을 더듬는 게 불편하지 않았다. 다만 저와 대화하는 상대가 답답하고 불편하게 여기진 않을까 걱정할 뿐.

 

 소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하려 애썼다. 그리고 거의 모두에게 친절할 수 있었다. 제게 아무리 사납게 대하는 사람이라도 눈 앞에서 화내는 일은 드물었고, 잘 해주는 사람 앞일 때는 더 많이 웃었다. 소녀의 주변에서 소녀에게 못되게 구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하여 소녀는 누구와 얘기를 할 때든 맑게 웃을 수 있었다.

 

 소녀는 무엇을 하든 제 친구들을 챙기기 바빴다. 언제나 이리저리 총총 뛰어다니며 친구들의 안부를 살폈고,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조그마한 몸집으로 맨 앞에 나서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물론 제가 다치는 건 겁냈지만, 다른 친구들이 다치지 않는다면 그걸로 됐다고 합리화 할 때가 많다. 하지만 앞뒤 재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나서지는 않는다. 제게도 파트너가 있고, 제가 다치면 걱정할 사람이 많다는 걸 알기에.

 

 다락 밖 세상을 경험한 지 4년째가 된 소녀는 아직도 신기한 것이 많았다. 다른 아이들이 유아기를 넘기며 해결한 궁금증은 이제야 소녀의 의문이 되었고, 소녀는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제 궁금증을 모두 해소하려 애쓴다. 어느 상황에서든 앞서 행동하는 건 다른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 때문이지만, 제 호기심 충족도 큰 이유. 책을 읽을 때마다 생기는 의문점은 주위 아이들에게 물으며 해결한다.

- 오튼베리 가家는 현미경으로 시작해 망원경 사업까지 입지를 넓힌 기업을 가지고 있다. 기업명은 [ASCOPE.]. 가문에서 전통적으로 생산한 유리를 이용해 만들었던 확대경을 시작으로 복합현미경까지 개발했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전자현미경으로 방향을 틀었다. 하지만 각종 연구실의 항의와 요청으로 인해 다시 복합현미경을 주력으로 삼게 되었다. 고배율에 작은 렌즈 크기에도 상이 어두워지지 않는 특수 기술로 제작한 현미경은 국내외 많은 연구실에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여러 공립, 사립학교 과학실에 현미경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시행 중이다. 쌍안경이나 망원경은 출시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출시 전부터 오랜 연구를 통해 대물렌즈의 지름에 비한 집광력과 분해능을 높은 수준으로 향상시켰다. 덕분에 아는 사람이라면 계속 찾는 브랜드로 손꼽힐 정도. 소녀가 태어나기 몇 년 전부터는 천체망원경과 우주망원경의 연구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아버지는 우주망원경을 연구하던 책임연구원이자 ASCOPE. 의 최대 주주였다.

 

-책을 많이 읽는다. 주로 읽는 분야는 과학/우주.

 

-천문학에 조예가 깊다.

 

-말을 더듬는다.

" 응? 아, 아냐. 아무 것도!"

- 하트 모양 로켓 목걸이. 성인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크기. 앞면에는 섬세한 장미 문양이 음각되어 있고, 안에는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이 들었다. 보이지 않게 옷 안에 착용한다.

 

- 성인 손바닥 두 개 크기의 갈색 가죽 크로스백. 유채꽃 압화 책갈피가 끼워진 '어린왕자' 책 한 권, 작은 진주가 달린 검은 머리끈 하나, 제 손바닥 크기의 공책 한 권, 검은 볼펜 한 자루가 들었다.

 

- 미니 플라네타리움. 정십이면체. 받침대를 제외하면 거의 비어있다시피 해 가볍다. 태어난 날의 밤하늘이 새겨져 있다. 아버지가 첫 번째 생일 선물로 만들어 주신 것. 언제나 소중하게 품에 안고 다닌다.

 단정하게 기른 흑발은 날개뼈에 닿는 정도. 함께 기른 앞머리는 오른쪽 귀 뒤로 넘겼으나, 미처 넘기지 못한 짧은 머리카락 몇 가닥은 얼굴 위에 늘어져 있다. 평소에는 무표정하게 있지만, 친한 이를 발견하면 곧잘 웃는 덕에 날카로운 인상은 주지 않는다. 소녀는 여전히 옅게 진 쌍커풀과 늪색 눈을 좋아했다. 거울을 자주 보는 편도, 외모 꾸미기에 열중하는 편도 아니지만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은 언제나 마음에 들었다. 오똑한 코 아래에는 도톰한 입술이 자리한다. 소녀의 밋밋한 얼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입술은 자주 핥고 물어대는 탓에 발그레한 윤기가 돈다.

 

 여전히 작고 마른 소녀는 어디든 활발하게 돌아다녔다. 케이프 자락을 팔랑팔랑 흔들며 돌아다니는 소녀의 뒤에는 작게 울리는 구두 소리가 남는다. 허여멀건 얼굴, 생기가 돌아 반짝이는 눈. 누군가와 대화할 수록 소녀의 표정은 다양해졌다. 호기심 가득한 눈은 도록도록, 사방으로 구르며 대화할 상대를 찾아다니고. 단정하게 갖춰 입은 교복 위에는 베이지색 목도리를 둘렀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목숨처럼 입고 다녔던 가디건은 케이프를 입게 된 관계로 기숙사 제 방 안에 소중히 걸어두었다. 조금 낡은 목도리는 아직도 열심히 두르고 다닌다. 입학 전 친할머니가 떠 주신 목도리는 따뜻하고 포근했다. 교복 아래로는 검은 메리제인을 신고 있다. 낮은 굽은 단단해서 또각또각, 소리가 난다. 손가락이 길고 얇은 편. 더 이상 손톱을 물어뜯지 않지만, 여전히 손톱은 짧게 깎는다.

- 나뭇잎 모양. 옥색으로 빛나는 보석 안에는 잎맥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다. 빛을 받는 곳은 미미한 노란빛이 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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