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혐오, 애정결핍, 친절

 소녀는 세상에 혼자 남았다. 이제 제 편에 서서 어깨를 안아줄 이는 모두 사라졌다. 사라진 외할머니, 죽은 부모님과 친할머니가 밤마다 꿈에 나타났다. 어서 오렴, 아가. 어떻게요? 방법은 네가 찾아야지. 달콤하게 말하며 웃는 이들에겐 눈이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마음 약했던 소녀는 가족의 죽음이 모두 제 탓이라 여기게 되었다. 겉으로는 아이들과 웃으며 대화하지만, 혼자 남으면 극도의 불안증세에 시달린다. 나와 있으면 모두가 불행해질지도 몰라. 이제 소녀는 마음 속에 선을 하나 긋고, 그 너머로 넘어오는 이가 없도록 신경쓴다. 다정하게 대하지만 그 이상은 아닌.

 그럼에도 소녀에게는 사람이 필요했다. 품에 안고 다독여줄 사람이. 하여 소녀는 제가 친하다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더 기대기 시작했다. 얘기를 나눌 때면 손을 잡거나 어깨를 기대고, 끌어안기도 서슴지 않았다. 얘기 나누며 상대의 손을 잡고 만지작거리길 좋아하고, 어딜 가든 함께 다니고 싶어했다. 기숙사 방에도 혼자 남아있길 꺼렸다. 1학년 때부터 함께 지낸 아이들이 없었다면 미쳐버렸을지도 몰라. 아직 소녀는 룸메이트들과 함께 자는 날을 좋아한다.

 심성 고운 소녀는 여전히 모든 아이들에게 친절하려 애썼다. 생각이 깊어진 만큼 속도 깊어져, 저보다 남 생각에 열중할 수 있었다. 제 몸보다는 다른 아이들 몸을 더 챙겼고, 표정이 좋지 않은 아이가 있으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눈치 빠르게 살펴보고 챙겼다. 그만큼 소녀는 스스로를 돌보지 않았다. 여전히 식사는 잘 하지 않고 무엇이든 먹으면 남들이 보지 않는 틈을 타 전부 게워낸다. 제 모든 불안함에 대한 내색을 남에게는 전혀 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보는 소녀는 언제나 밝게 웃는 모습이다.